며칠 전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기내에서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봤다. 제목은 ‘더 컴퍼니 맨(The Company Man)’. 경쟁력을 잃어가던 미국의 대형 조선회사가 직원을 대량 해고한다. 마케팅 부서에서 잘나가던 주인공(벤 애플릭 분)도 포함된다. 갑자기 실업자가 되자 그의 월부 인생은 비상이 걸린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은 아내의 오빠가 하는 건축회사에서 막노동을 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업자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다.

요즘 세상에 실업자에게 기술훈련을 시켜주고 새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있을까. 정부 안에서는 고용노동부가 그런 역할을 한다. 2008년 시범실시를 거쳐 2009년 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내일배움카드제가 그것이다. 정부로부터 한 해 2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카드를 받은 실업자(비정규직 근로자도 가능)가 직업학교나 전문학원을 찾아가 원하는 훈련을 받는 제도다. 교육비의 20~40%는 본인 부담인데 저소득층은 이것도 면제다. 월 5만원의 교통비와 6만원의 식비도 준다. 따라서 1인당 연간 약 300만원의 국비가 지원된다. 

그런데 이 세금,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장에선 정책 의도와는 딴판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골자는 정부가 돈은 대줄 테니 각자 알아서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훈련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결과 특정 분야로만 사람이 쏠리고 있다. 요리·미용·제과·제빵·패션이 대표적이다. 드라마와 언론에서 뜨는 직업으로 자주 소개되는 데다 다른 일에 비해 힘도 덜 들기 때문이다. 원하는 교육을 받았지만 일자리 구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창업도 해보지만 이미 포화상태라 몇 달 만에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더 있다. 기계·금속·용접 등 이른바 3D 업종으로는 사람이 가지 않는다.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지만 현 제도로는 속수무책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직업전문학교에 훈련 인원을 승인해 주면 직업학교에서 수강생을 모집해 교육시켰다. 예컨대 용접과정에 700명을 배정하면 그만큼의 기능공이 배출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잡음이 생겨났다. 직업학교들이 학생을 많이 배정받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유착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 주도, 공급자 중심의 직업교육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꾼 것이 지금의 제도다. 이채필 현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장 시절 설계했고 지금도 애착이 많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들도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다른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 제도는 서구의 바우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그 나라에서는 어떨까. 큰 문제 없다고 한다. 전문 직업컨설턴트들이 노동시장 상황과 당사자의 적성을 면밀히 연구해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고용센터에도 상담사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인 데다 경험도 많지 않아 책임감 있게 지도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구직자들 역시 “내가 원하는 교육을 받겠다는데 왜 말이 많으냐”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이렇다 보니 직업교육이 옆길로 새고 있다. 이것 좀 배워보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로 바꾸고…. 그래서 교육기간이 대부분 1~3개월이다. 6개월이나 1년은 배워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데 이렇게 얼치기로 배우니 아마추어만 양산한다.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은 구직자들의 희망만 중시했지 정작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카드 발급 심사도 강화해 취업 의사가 분명한 사람에게 세금이 지원돼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훈련을 받으니 좋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직업훈련의 목표는 훈련 자체가 아니라 취업이다. 여러 사람이 교육을 받지만 기업이 탐내는 사람이 없다면 세금만 날리는 꼴이 된다. 이채필 장관은 기존의 노동부 간판에 왜 ‘고용’이란 단어가 붙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심상복 논설위원

*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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