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국으로 나가서 일을 한번 해봐야겠다고 문득 생각을 한건 5년전인 2004년 10월 경이었다. 뭐... 나름 그당시 가지고 있었던 직종이나 또 속해 있던 회사에 큰 불만이 있었던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2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로 외국에서 일을 한번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서점에 갈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영어회화 책이나 단어집을 하나씩 둘씩 사모으곤 해었다. 내가 가보자 하고 마음을 먹은 나라는 바로 호주...Austraila...

너무나 큰 땅덩어리로 인해 그 자체가 바로 하나의 대륙인 나라...

동부에서 서부까지 비행기로도 무려 6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같은 나라인데도 3시간의 시간차이가 나는...그미래의 땅이 어느덧 내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물론 내가 호주로 갈려고 결정적으로 생각을 굳힌건 어느날 아무생각없이 보던 정규뉴스에서 호주는 광산에서 식당 키친핸드만 해도 연봉이 8만불이 넘는 다는 그때의 8만불이 한국돈으로 얼마인지 계산도 못한채 나는 이미 “ 아...저기다...그래...호주다.” 라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버린 후였다. 그렇게 마음먹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던중 기회는 참 소리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갈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벤치에서 읽고 있던 한 일간지의 구석 조그마한 광고에서 나는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주는 호주에서 일할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본것이다.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줄은...

마치 내안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자동으로 손에든 모바일 폰으로 그곳으로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이 주선 하던 호주서부의 한 용접회사 였는데 그 당시 내가 업으로 삼고 있던 직종도 바로 용접이었다. 이게 어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아닌가...

꿈을 꾸는듯한 멍한 기분으로 전화를 한곳은 아마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 취업 부서 였던 것 같다. 이력서를 보내주면 검토해보고 나서 연락을 준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떨리던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3~4일동안 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전화를 걸어본게 몇 번 이었던가..

5일째 드디어 연락이 왔다. 서류가 통과 됬어니 실기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월몇일까지 인천에 있는 무슨 직업학교로 오란다... 인천이 문제인가 인천이 아니라 북한도 갈수 있을거 같았다.

길거리에 쏟아부은 물이 5분도 채 안되어 얼어버리는 1월의 동장군도 나의 열정을 식힐수는 없었다. 2005년 1월 인천의 한 직업 훈련소에서 실기 테스트를 하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사용하던 용접기가 아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만져보는 새로운 종류들의 용접기로 테스트를 하였는데 아...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의도했던 품질은 전혀 나오지 않고 눈으로 봐도 너무 실망해서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호주현지회사 사장이란 분이 면담을 한다는거다. 난 말했다. 호주로만 가게 해달라고 가서 일만 시켜달라고...일단 우리나라 밖을 벗어나면 뭐든지 할수 있을것만 같았다. 내 생전 그렇게 애절한 마음으로 면접을 본건 처음 이었을 것이다. 남쪽의 내집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무겁지도 않은 기대감으로 5시간이 넘는 지겨운 버스를 타면서도 호주는 어떤곳일까를 상상하면서 즐겁게 내려 갔었다. 내가 호주에서 일을 할수 있었던건 호주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데 호주는 나라의 크기는 아주 넓지만 인구는 그당시 2200만 정도.. 나라는 큰데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자는 부족했기에 자기나라에서  많이 부족한 분야의 기술자를 외국에서 모집을해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해서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시스템 이었다. 내가 호주에서 살 때 만난 독일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통 독일 소시지를 만들줄 안다고 해서 영주권을 받았었다. 인력이 부족한 분야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특히 전문직으로 의사,간호사 는 너무나 부족해서 시골의 보건소 같은 경우는 거의 외국의 의사들이 많고 그밖의 회계사 IT분야 또는 엔지니어 특히 마이닝 쪽 엔지니어나 타일러 나 미장같은 건축 분야 장동차 정비 등이 있고 내가 업 으로 삼고 있는 용접도 많은 인력이 필요 했었다. 호주가 기회의 땅이란건 호주에 가서야 알았다.

내가 호주로 가서 일을 할수 있는 비자가 2005년 4월 15일에 호주 이민성으로부터 나왔다. Sponsoring Overseas Employees To Work Temporaily 비자라고 해서 호주에 있는 사업주가 스폰서를 서서 일을 할수 있는 비자인데 나는 4년짜리 즉 호주에서 4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온 것이다.

2005년 5월14일 나는 꿈에도 그리는 호주로 가게 되었다. 그당시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된 약 20여명의 동료들과 장장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호주에서도 서부호주 그 서부호주의 주도인 퍼스의 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왜그렇게 추웠는지... 어떻게 5월이 그렇게 춥나 했더니 호주는 남반구 즉 북반구인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란다...한국은 5월의 따뜻한 초여름 이지만 호주는 이제 겨울을 향해가는 낮가을 이었던 것이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회사관계자의 차를 타고 정해진 숙소로 가는 길은 경이적이었다. 난생 처음 와보는 외국이었던 것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눈을 씻고도 찿아볼수 없었던 드 넓은 잔디공원 그리고 그위로 노니는 이름 모를 아름다운 새들... 등을 누이고 담소를 나누는 듯하는 노랑머리의 외국인들...그리고 낮으로 갈수록 뜨거워 지는 태양...그게 내눈에 빛핀 호주의 첫 인상 이었다.

입국후 2주만에 현지 광산 부품 제조회사에서 첫 근무를 시작 하였는데 장난이 아니다...일단 호주의 제조업 업쪽 특히 용접 회사는 입사전 반드시 기술 테스트를 거친다. 물론 우리같은 외국인 기술자는 언제 어떤 회사에 가서도 바로 작업에 투입 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실력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실력이 갖춰져 있는지를 테스트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회사에서 요구하는 적정수준의 실력이 있어야 그회사에서 일을 할 수가 있는것이다. 이건 비단 나같은 외국인 QNS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항이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용접기계 또 작업방식 으로 인해 조금 당황 했지만 기술테스틑 통과...첫날 작업을 마치고 새벽에 퇴근하는 차 안에서도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다. 일 못한다는 소리 안들을려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흘러내린 땀으로 인해 호주의 새벽이 그렇게 추울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고 두달이 채워져 갈때쯤 시드니로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완전히 여행가는 기분이 드는거다. 서부에서 동부 시드니까지 장장 6시간의 비행을 하고 바로 그 시드니 공항에서 우리나라의 강원도 두메산골 쯤 되는시골마을로 또 다른 경비행기로 두시간을 더타고 가서야 최종 목적지에 도달 항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자동차로 두시간을 더 타고가야 했지만...정말 왠만한 외국 가는것보다 더 많은 비행기를 타고 간 그곳은 이제막 개발이 시작되어 건설이 시작되는 골드마인..즉 금광 이었는데 금이 얼마나 많이 묻혀 있는지 20년을 넘에 파먹을수 있다고 하는데 호주는 이런 금광이 셀수없을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뿐인가 호주 어디서든 어딜가서든 땅만 팠다고 하면 돈이 나온다. 금 니켈 코발트 우라늄 철광석 알루미늄 에 게다가 바다에는 파이프만 꽂어면 천연가스에 석유가 나오는 축복 받은 나라가 바로 호주 였던 것이다. 출장을 가서 느낀건 일단 돈이 된다는거다...서부쪽에서 돈이 별로 안된다는 공장에서도 1주일(호주는 주급)에 받는 주급이 한국에서 일할 때 받은 월급의 90% 였는데 출장을 오니 1주일 주급이 한국에서 받았던 월급의 두배 가까이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호주에서 4년을 가까이 일을 하니 차츰 영주권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거다. 한국에 가면 더저히 일을 못할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호주에서 일정기간 경력이 있고 영어가 적정수준이 되면 영주권 취득도 그리 어려운게 아니었다.

영어라는건 호주에 살면서 필수로 배워야 되는 것이 아닌 정말 강제적으로 라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내땅에서는 말이 통하니까 사는데 무슨 불편이 있겠냐 만은 외국으로 갔어면 그나라 언어를 배워야 하는건 당연한거다. 병원 갈 때 공항에 갔을때 집에다가 인터넷이나 전화 연결할 때 애들을 학교에 보낼때도 하다못해 집앞 슈퍼를 가더라도 영어 한마디 못하면 얼마나 불편한가...더더군다나 나 같이 출장을 가려면 영어는 필수이다. 어느 산업 현장이나 일을 하기전에 인덕션이라고 하는 교육을 하는데 이 교육엔  그 현장만의 특이사항이나 주의 사항 안전교육 등을 하게 되는데 교육후엔 반드시 시험을 친다...영어로...당연히...그러니까 영어를 못하게 되면 출장을 못가게 되고 출장을 못가게 되면 남들보다 돈을 작게 버는게 된다...고로 영어는 안배울래야 안배울수가 없다...3년전에 네이버 라는 인터넷 포털에 호주광산에 관한 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한달에 4~5통의 메일로 광산취업에 관한 문의를 해오고 있다. 한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그렇지만 호주광산에 취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쉽게 될 수 있는게 아니다 내가 용접을 예로 들면 일단 실력이 되어야 한다 내가 4년동안의 호주에서의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면 실력이 없어면 바로 퇴출이다...그리고 용접같은 겅우도 한가지만 할줄알아서는 안된다. 3~4가지의 용접기술을 자유자재로 할줄 알아야 하며 그기에 성실함이 가미 된다면 호주 어느곳 어떤 회사로 가던지 성공할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언어는 그 다음이다. 실력을 인정받고 충분히 자리가 잡힌다음 배워도늦지 않다. 그 다음에 457 같은 임시 취업비자로 호주로가서 일을 하는 와중에 광산도 출장가고 가스 건설 현장에도 출장을 갈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냥 단기간에 호주에 가서 떼돈을 벌어 보겠다는건 허황된 생각이다 어디에 가서도 꿀리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든든한 스폰서 밑에서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오고 돈은 따라 오는 것이다. 호주는 정직한 나라이다. 힘들고 어렵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일수록 더 대우받고 돈도 많이 벌수 있는 블루칼라가 대접 받는 나라가 바로 호주라고 생각한다. 꼭 드넓은 땅에 깨끗한 공기에 잘 갖추어진사회보장 자우스러운 분위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호주는 꼭 한번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와서 경험 해봤어면 하는 나라중에 하나이다.아마 2년도 채 못돼서 여기서 살고 싶다...하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철저한 준비와 자신감과 계획성이 있어야 하는건 물론이고 내나라 망신 시키지 말자 라고 하는 애국심도 어느정도는 있어야 할것이다...분명 호주는 기회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뭐 꼭 한국보다 많은 수입 뿐만이 아니더라도 40 50 에 대학을 가도 부끄럽지 않은...우리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 하는 그런 나이데도 졸업을 해서 당당히 취업을 할수 있는나라...성별이나 학력 장애를 안따지고 오로지 실력만을 추구하는 나라가 호주 인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느정도의 인종 차별도 있고 자기나라 국민이 아니면 가혹하게 세금을 물리는 그런 장애도 있지만 그나라가 지니고 있는 매력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매일 취업에 고민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이시기에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우리나라에서만 버둥대고 샬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물론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해서 호주도 이민법이 갈수록 까다로워 지고는 있지만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는것처럼 찿아 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나는 요즘도 내 주위 동생들 만나면 매일 이런 말을 한다. 나라밖을 한번 나가 봐라 나가서 한번 살아보고 자식 나으면 꼭 꼭 외국 여행 시키라고...우리나라 말고도 이 지구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는데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가 있는가...젊디 젊은 한국의 기술자들이세계만방으로 퍼졌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