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북한이탈학생에 대한) 가엾고, 불쌍하다는 식의 아픈 기사보다는 잘 극복해 나가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진정희 태랑초 교사)

새터민 2만 명 시대. 북한이탈주민이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진정희 교사의 바람과는 달리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아직도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더 많이 회자되는 게 사실이다. 정부는 1997년에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법령을 제정했고 1999년에는 하나원을 건립했으나 북한 이탈 주민들이 실제 남한의 삶에 정착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특히 부모와 함께 남한에 온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살벌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이탈 학생들은 "기초가 없으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들 중엔 오랜 중국생활 끝에 한글보다는 중국어가 더 익숙한 아이들도 많다.

 
▲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 청소년수련의집.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눈싸움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 청소년수련의집.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눈싸움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나이도 많은데 공부도 못하냐는 편견이"

'북한이탈학생 겨울캠프'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 청소년수련의집.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 동안 열리는 캠프에 140여 명의 학생과 90여 명 정도의 현직 교사, 18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다. '1:1 맞춤형 지도'를 위해서다. 서울시에만 459명 정도의 북한이탈학생이 있으니 4분의 1이 조금 넘는 아이들이 참석한 것이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는 이설아(가명) 학생은 3년 전에 한국 땅을 밟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북한 땅을 떠난 후 중국에서 3년을 살았다. 그 사이 어머니는 두 번이나 잡혀서 북으로 이송됐지만 친척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설아 양은 초등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데 한국에 온 후 나이에 맞춰 중학교 2학년에 들어갔다. 탈북학생들을 교육하는 한겨레 중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영어 외에 곱셈, 나눗셈 등을 처음 배웠다. 그 후 한겨레 고에 진학했지만, 진학한 3월에 바로 일반고로 전학했다. 자립의 의지가 강해서다.

전학 후 학교생활은 어땠냐고 물으니 이 양은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제가 주눅이 들었던 것 같아요"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올해 소원이 "기쁘게 사는 것"이라는 이 양은 야망가다. 사람들 돕는 게 좋아서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유엔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정치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정치인을 꿈꾸며 이 양은 남들 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공부한다.

▲ 교사(왼쪽)가 학생에게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 교사(왼쪽)가 학생에게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하지만 이 양처럼 희망과 용기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 중에는 방법과 길을 몰라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박현정(가명) 학생은 "뒤처지는 공부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고 싶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엄두를 못 낸다"라며 한숨지었다.

4년 전에 한국에 온 현정 학생 역시 배움의 기회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북한이탈학생들은 대부분 한창 배울 나이 중국, 캄보디아 등을 떠돌며 한국에 들어올 틈을 엿보느라 기초를 쌓을 시기를 놓쳐버린다. 박 양도 마찬가지다.

또한 조그만 일에도 상처받을 수 있는 예민한 나이에 동급생들과 나이가 맞지 않는 것도 고민이다. 박 양은 "처음에는 나보다 어린아이들이 반말을 해서 자존심도 상했어요. 같은 반 아이들과 주민 번호 앞자리가 다르니 그것 때문에 상처받기도 해요"라고 토로했다.

그는 기초가 많이 부족해서 고민이지만 학교에 새터민이 많아 선생님이 일일이 신경 써주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새터민 밀집 지역 중 하나인 강서구에 사는 탓에 선생님의 관심을 못 받은 거 같다는 나름의 분석이다. 박 양은 "고등학교는 새터민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럼 절 신경 써주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이도 많은데 공부도 못하냐"는 편견이 싫지만 기초생활 수급비용으로 학원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박 양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한글을 몰라 중국어로 답을 쓰는 아이도"

이 캠프는 통일 교육에 뜻이 있던 초·중·고 선생님들이 만든 '서울초·중등남북교육연구회(회장 최안기 용산고 교장)'에서 2005년부터 운영해온 것이다. 연구회 소속 선생님들은 탈북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낙오되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아서 학교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있지요. 문제는 이해했는데 답을 우리말로 쓰지 못해서 중국어로 쓰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럴 땐 참 난감해지죠. 정답으로 처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 번은 간통이란 말의 뜻을 '간을 뚫는다'라고 해석해 놓은 아이도 있었어요.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송두록 서울고등학교 교사)

결국 교사들은 이 학생들을 방학마다 가르치기로 하고 2005년 여름 방학 때부터 '집중 과외'를 시켰다. 처음엔 선생님 30명과 아이들 26명이 모였다.

"그 당시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자느라 공부하러 안 오려고 해서 집까지 찾아가서 직접 데려오고 했죠. 총 30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시켰어요. 캠프가 끝나자 아이들이 '공부를 좀 알 것 같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말 한 아이들은 다음 겨울 캠프에 또 오고, 지금 몇 년째 오고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최경자 공덕초등학교 교장)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교육청에서 지원받는 연구회비를 보태고 교사들이 회비를 걷어 캠프비를 마련했지만 1인당 책정할 수 있는 밥값은 고작 2500원이었다. 인터넷에서 급식 업체를 무수히 많이 알아봤지만 해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인원이 적어서다. 그때 한 급식업체 사장이 뜻을 알아주고 손해를 보고 급식을 해줬다. 덤으로 귤까지 아이들에게 줬다고 했다.

그러다 다행히 2008년부터는 교육부 지원 사업이 됐다. 여름엔 더위와 겨울엔 추위와 싸워가며 공부하는 모습이 한 장학사의 눈에 띄어 교육청 지원을 받게 됐다. 선생님들은 '지금은 좋은 여건에서 더욱 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고 웃어보였다.

"탈북 청소년 교육과정 탈락률, 일반 학생의 7배 수준"

그러나 여전히 '성공'은 온전히 아이들 개인의 몫이고 아직은 성공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울초‧중등남북교육연구회의 초등부 부회장인 최경자 교장은 "이 아이들이 통일로 가는 길목의 피해자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캠프의 진행을 돕고 있는 자원 봉사자들 중에는 북한이탈학생들도 있어요. 서강대, 연대, 이대 등으로 진학한 학생들인데 아이들이 그 친구들 말을 정말 잘 듣고 따라요. 이번에 강연을 하는 친구들도 대학에 진학했거나, 미용사 등 자기 진로를 찾은 학생들로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진로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런 강연에 굉장히 집중해요" (최경자 교장)

2010년 국정감사 때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2009년 탈북 청소년의 정규 교육과정 중도 탈락률은 8.8%로 일반 학생의 7배 수준이다. 중학교는 8.5%, 고등학교는 9.1%다. 2006년 10.9%, 2007년 17.9%, 2008년 11.0%로 계속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통일부는 탈북학생의 중도탈락 원인을 △취학연령의 차이 △남북한 정규과정 교육내용의 차이 △언어 차이 △친구 사귀기의 어려움 △정체성 혼란 등으로 꼽았다. 이날 캠프에참가한 교사나 학생들이 말한 어려움을 실제 대부분의 탈북 청소년들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현정 양은 가장 재밌는 과목으론 북한에서 배워보지 못한 '영어'를, 가장 어려운 과목으론 교육 내용이 전혀 다른 '국사'를 꼽았다.


▲ 교사와 학생이 나란히 양말을 맞춰 신고 공부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탈북 학생들이 겪는 학습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교육청은 "방학 캠프 외에도 학기 중에 꾸준히 멘토링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원곤 장학사는 "학생들과 선생님을 일대일로 매칭해서 공부도 같이하고 문화체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 가구 자체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녀들의 교육 역시 부실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 따르면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도 80% 넘는 탈북자들이 200만 원 미만의 낮은 가구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평균 고용률은 50%를 넘지 못한다.

이들의 캠프는 북한이탈 주민의 안정적 정착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정책과 관심이 절실함을 보여준다. 특히 교사들은 '의식 변화의 선행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모아질 때 진정희 교사가 원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경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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