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시네마 메이크업 스쿨(CMS)’을 찾았다. 한인타운과 지근거리였다.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를 끼고 있는 도시에 분장술을 가르치는 직업학교가 생겨난 것은 자연스럽다. 형형색색의 재료로 괴물을 만드는가 하면 요정의 화장술에 빠진 여학생도 보인다.

오래된 건물의 몇 개 층을 쓰고 있는데 공간은 좁고 규모도 작았다. 현재 수강생은 한국인 3명을 포함해 72명. 한국에서 같이 간 직업학교 교장들은 시설은 국내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 7시간씩 18주간 수강료가 1600만원이나 한다. 직업훈련에선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다.

학교장들은 외국 학생은 얼마나 되고 학위는 주는지 물었다. CMS 담당자는 약 40%가 외국 학생인데 중남미·아시아·유럽 등 다양하다고 했다. 학위 과정을 묻는 질문엔 학위가 필요하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학위과정을 만들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졸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필요한 것도 배워야 하고 수강료도 비싸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업 교육에 무엇일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1993년 설립된 CMS가 짧은 시간에 이 분야 최고가 된 노하우를 짐작할 만했다.

어느 나라나 직업학교를 찾는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그래서 CMS는 강사 선정에서부터 각별한 신경을 쓴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전문가를 모신다는 것이다. ‘아바타’ ‘배트맨 비긴스’ 등에서 메이크업을 담당한 전문가와 보그·코스모폴리탄 등 유명 패션잡지에서 강사를 초빙한다. 분장이나 특수효과 기술도 빠르게 변하는데, 현역을 강사로 써야 최신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장점이 있다. 수업하면서 출중한 학생을 눈여겨봤다가 수료와 동시에 제작팀과 연결해 준다고 자랑했다. 실용을 최고 가치로 삼는 나라의 직업훈련장다웠다. 졸업생은 언제라도 청강할 수 있으며, 강사와의 유대도 지속할 수 있다. 아직 일을 못 구했거나 더 나은 자리를 찾으려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다.

 
학생 모집에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재학생이든 졸업생이든 모두들 자발적 홍보맨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케팅 수단은 학교 홈페이지를 비롯해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이다. 여기에는 취업 후기나 필요한 정보가 많다. 학교 측도 영화현장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구인정보를 물어오고, 인턴학생들은 그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동문들에게 뿌려준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운영하는 직업전문학교인 LATTC도 둘러봤다. 1925년 설립된 이 학교는 자동차정비·집짓기·요리·미용 등 90개 과정에 약 1만5000명이 수강하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외국 출신이 다수다. 밴쿠버에서 방문한 라살레 직업학교는 16개국에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가 아니라 아예 지구촌 학생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하는 셈이다.

견학을 마친 학교장들은 직업학교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봤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520곳에 달하는 한국의 직업학교도 하루빨리 외국 학생을 받아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고용노동부가 불법체류자 문제를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학교장들은 젊은이들이 힘든 직업을 외면하는 바람에 학생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좋은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중국 등 외국 젊은이는 많고, 강사진이나 교육시설도 문제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기술한류’의 불을 지필 수도 있다. 드라마와 K팝에 이어 또 다른 한류 붐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명한 프랑스 요리학원이나 스위스 호텔경영학교에 한국 젊은이가 몰리듯 우리도 외국학생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심상복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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