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상 가나 했던 친구들, 이젠 우릴 부러워해요”

[중앙일보 위성욱.송봉근]


부산은행 공채에 합격한 부산진여상 3학년 김민지(오른쪽)양과 김지원(오른쪽 둘째)양이 18일 오후 학교를 방문한 부산은행 빈대인 인사부장(왼쪽)으로부터 합격증을 받고 있다. 부산진여상은 올해 부산은행 신입행원 공채에서 합격자 4명을 배출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네. 합격자가 4명이나 된다고요.”

 18일 오후 5시 강영대(60) 부산진여상 교장은 전화기를 붙잡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18년간 굳게 닫혔던 은행 취업문이 열린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부산은행은 홈페이지를 통해 신입사원 합격자 10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이들 중엔 고졸 행원 10명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부산진여상 유통경영학과 3학년 김지원(18)양도 그중 한 명이다. 이날 부산진여상에서 만난 지원양은 함박웃음을 띠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여상에 간다고 했을 때 인문계로 진학한 친구들이 다 걱정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친구들이 ‘난 언제 대학 가서 좁은 취업문을 뚫을까. 부럽다’고 해요.” 지원양이 여상을 택한 건 여상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한 네 살 위 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언니 또래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용돈까지 다 부모님에게 타 쓰지만 언니는 자기가 번 돈을 엄마에게 주고 용돈을 받아 저축도 했다”며 “이런 모습을 보고 여상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부산은행에 함께 합격한 이 학교 김민지(18·지식경영학과 3학년)양도 “무조건 대학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취업으로 꿈을 실현하고 나중에 대학도 갈 수 있는 여상을 꼭 추천하고 싶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입학할 때만 해도 은행 취업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방은행인 부산은행만 해도 1993년 대졸 행원 20명과 고졸 행원 40명을 뽑은 이후로 고졸 채용을 중단했다. 한때는 상고와 여상이 은행에 취업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대졸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상고 출신은 은행에 도전할 기회마저 봉쇄됐다. 지난해 들어서야 부산 지역 특성화고교들이 고졸 출신 학생을 채용해 달라는 요청을 부산은행에 하기 시작했고, 은행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취업길이 열렸다. 올해는 부산진여상 4명을 포함해 부산여상 2명, 동주여고·마케팅고·계성정보고·삼정고 각 1명 등 6개 특성화고교 출신 10명이 부산은행 배지를 달게 됐다. 올해 취업한 10명은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부산진여상 황철환 교감은 “여상과 상고 입장에서 은행은 가장 상징적인 취업처”라며 “은행에서만 예전처럼 졸업생을 받아 주면 여상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부산진여상의 경우 2008년 부산시교육청 지정 경영 분야 특성화고교로 지정되면서 취업반 비율을 50%에서 70%로 늘렸다. 교육 내용도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무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다.

 18년 만에 고졸 출신을 선발한 부산은행도 고졸 출신 신입사원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빈대인 부산은행 인사부장은 “올해 여상 합격자들의 인·적성 점수 평균이 대졸 합격자들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며 “고졸 채용을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고졸 채용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올해 국민·신한·기업·부산은행이 이미 고졸 채용을 했고, 산업은행과 경남은행이 최근 고졸 출신을 신입사원으로 뽑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산=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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