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력의 벽 뚫는 마이스터고…기술명장(名匠) 나가신다 ◆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2년 전 가을, 아들과 심하게 다퉜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당시 중학교 3학년생 아들은 단호하게 일반계고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다. A씨의 학창 시절, 실업고라며 기피했던 전문계고 계열 마이스터고를 가겠다고 우기는데 속이 터지다 못해 남아나질 않는 듯했다. 아들은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데 일찍부터 맞춤형 교육을 받는 게 낫지 않겠냐고 A씨를 설득했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중학교 3년 내내 반에서 10등 안에 들던 성실한 아이였다. A씨는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2년이 지나 아들이 고2가 된 지금, A씨는 마이스터고에 간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친구 자녀들은 대학입시에 매달리느라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지겨워한다는데 제 아이는 즐겁게 학교에 다녀요. 배우는 것도 많고 재미있다고요. 졸업 뒤 취업도 이미 보장됐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정말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때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고요.”

A씨는 “전문계고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럽다”고까지 말했다.

2009년 처음 문을 연 마이스터고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학력 인플레이션’을 해결해 줄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마이스터고는 이름 그대로 ‘명장’을 양성하는 게 목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술전문가. 굳이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마이스터고의 근원은 과거 실업고라고 불렸던 전문계고다. 이 전문계고 명칭이 지난해부터 특성화고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기존 특성화고 중에서도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학교로 선별, 지정된 곳이 마이스터고다. 지난해 3월 21개 학교가 동시에 문을 열었다.

독일 실업학교 벤치마킹

‘명장’을 뜻하는 독일어 ‘마이스터’에서 이름을 따왔듯, 마이스터고의 벤치마킹 대상은 독일이다.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35% 정도. 대학에 가지 않는 나머지 학생들은 직업교육을 받는다. 대학 졸업생 나이 정도인 25세 안팎의 기술자들이 최고 기술자를 뜻하는 마이스터 자격시험에 통과한다. 젊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14~15세부터 현장교육을 받아 이미 경력 10년 차의 중견 기술자다.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하면 일반 기술자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과 대졸자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도록 지도하는 독일과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지나친 대졸 중심 사회라는 점에선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무엇보다 대학진학률이 지나치게 높다. 80%에 육박하다 보니 고용이 왜곡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대졸자의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면, 중소기업 기능직은 구직난을 겪는 현상이 생겨났다. 반값 등록금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교육비는 치솟는데 졸업 뒤 취업도 못 하는 대학에 보내야 하느냐는 얘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정부가 고졸자를 배려한 일자리 정책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추세라면 어정쩡한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특성화고에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취업에 더 유리한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학력 철폐 흐름에 마이스터고가 앞장설 가능성이 높다. 마이스터고는 특성화고 중에서도 전문성이 뛰어난 학교다. 교육방식부터 다르다. 마이스터고는 학교 유형상 ‘자율학교’로 분류되는데 교육과정을 다채롭게 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업 없이 하루 종일 실습을 할 수도 있고 원하는 과목만 집중적으로 수업할 수 있다. 그야말로 특성화 분야에 맞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받는 혜택도 크다. 마이스터고는 학비가 전액 면제다. 기숙사비도 지원받는다. 3600명 재학생 가운데 전체의 80%가 기숙사에서 지낸다. 성적 우수학생에게는 국외 직업전문학교 연수 기회가 주어진다. 광주자동화설비공고 학생은 유럽에 가서 자동화 기술을 체험했고, 거제공고 학생들은 삼성중공업 중국 닝보공장을 다녀왔다. 인천전자마이스터고 1학년 학생들은 이번 방학에 필리핀으로 20일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국외 취업을 대비한 어학연수다. 실제 캐나다 기업과 내년에 30명 이상 취업시키는 협약을 체결하려고 협의 중이다. 남자 졸업생에게는 최대 4년간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는 혜택도 주어진다.

기업과 연계한 맞춤형 수업 활발

정규 수업 이외 학습은 마이스터고의 또 다른 매력이다. 매경이코노미가 마이스터고를 취재한 8월 초는 방학기간. 그러나 방학 중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었다. 학교별 평균 10개의 방과 후 프로그램과 14개의 동아리가 운영 중이다. 방과 후 수업은 주로 산업수요에 맞춘 주문형 교육반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이미 취업을 약속받았다. 졸업 뒤 전공을 살려 기술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려는 ‘군 특성화반’도 있다. 이들은 자격증도 쉽게 딴다. 부산자동차고의 경우 1학년생 119명 가운데 115명이 자동차검사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마이스터고가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취업률에 있다.

전문계고는 졸업생 취업률로 평가받아야 한다. 아직 출범 2년째라 졸업생이 나오지 않아 취업률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이미 재학생 상당수가 졸업 뒤 ‘입사합격증’을 미리 받았을 만큼 기업들 관심이 뜨겁다. 삼성전자현대중공업 등 1330개 기업이 마이스터고의 취업과 교육과정 지원을 약속했다. 취업을 약속한 인원은 총 2309명. 한 학년 재학생 3600명의 64%에 달한다.

삼성전자, 학비 주고 채용 보장

국내 최고 기업 삼성전자는 마이스터고 학생을 삼성전자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한다고 밝혔다. 채용 예정자는 한 학년 정원 3600명의 3~5%인 100~180명 수준. 채용 예정자는 졸업 전까지 삼성전자로부터 학업보조비를 지원받는다. 방학 중에는 삼성전자 현장실습을, 학기 중에는 삼성전자 맞춤형 방과 후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2013년 2월 졸업과 동시에 채용된다.

원기찬 삼성전자 전무(인사총괄)는 “마이스터고 학생 같은 우수한 기능 기술 인력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실력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기능경기대회 입상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향후 10년간 매년 100명씩 모두 1000명을 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 출신으로 채용한다. 현대차는 정규직 채용은 물론 채용 이후에도 ‘기술멘토제’로 분야별 최고의 기술 장인을 육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거제공고와 조선 부문 마이스터를 육성하기로 산학협력 협약을 맺었다. 현대중공업은 마이스터고 10곳과 산학협력을 맺고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나 기술 우수학생 등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충북반도체고와 협약을 맺고 전 교사를 대상으로 4개월간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장기연수를 실시한다. 구미전자공고는 LG이노텍,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 48개 산업체와 협약을 맺고 ‘산학 맞춤형’ 학급을 운영한다. 기업들은 원하는 실력 있는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이스터고 출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STS반도체통신은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와 반도체 조립·테스트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오는 10월 전자·기계 분야의 13개 마이스터고 2학년 재학생 가운데 40명을 선발한다. 채용된 학생은 방학 때 맞춤형 기술교육과 인턴 과정을 거쳐 3학년 말 입사한다. 이른바 입도선매다. 학업보조금 200만원도 지급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전국 제조업체 33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1.2%의 기업이 졸업생 우선채용 등의 방식으로 마이스터고 학생을 우대하겠다고 답했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기능인력 부족현상이 계속돼 마이스터고에 거는 산업계의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기술인 양성 요람 되려면 시간 더 필요

산업계 출신들이 앞장서 교장에 지원하며 기업과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점도 고무적이다. 현재 교장공모제로 교장을 뽑는 마이스터고에는 산업체 출신 교장이 적지 않다.

대전 동아마이스터고 위성욱 교장은 삼성전자 상무 출신. 이 학교는 올해 초 삼성LED와 졸업생 채용 협약을 맺었다. 삼성LED 요청으로 이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방과 후 수업 ‘삼성LED 인재양성반’도 운영한다. 부산자동차고 이승희 교장은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 출신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부산자동차고에 완성차 20대 등 10억원 상당의 교보재를 제공했다. 강희태 수도전기공고 교장(한국전력), 최돈호 구미전자공고 교장(LG전자), 장헌정 울산마이스터고 교장(풍산금속) 등이 산업체 출신 교장들이다.

마이스터고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뜨거워지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박영조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은 이 학교가 마이스터고로 전환되기 전인 인천전자공고 시절에도 교장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환 이전에는 중학교 내신 성적이 하위 10%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마이스터고로 전환된 지난해에는 상위 35%대 학생이 입학했고, 올해는 상위 25%대로 기준선이 더 높아졌다.

이 학교뿐 아니다. 올 초 서울 마이스터고에 합격한 중3 학생 평균 내신 성적이 상위 25%로 지난해보다 6%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실력 있는 학생들이 입학지원서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입학생 전형률은 2.95 대 1.

정부의 마이스터고 출신 학생 취업률 목표는 100%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공언이기도 하다. 정부는 2015년까지 마이스터고를 50개로 늘린다.

다만 마이스터고는 고졸자 취업문제의 첫걸음이지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마이스터고 졸업 뒤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훗날 야간대학을 졸업할 때 다른 대졸 정규직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기업문화가 조성됐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내년 배출될 마이스터고 1기 졸업생들이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취업이 목적인 특성화고 출신 졸업생의 71%도 지난해 직장 대신 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고
기술명장을 길러낸다는 취지로 기존 특성 화고(옛 전문계고)가 전환한 학교. 올해까지 전국 21곳이 개교했다. 수업료와 입학금 등이 전액 면제되고 졸업 뒤 취업할 경우 군 복무를 최대 4년 연기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이 있다. 전국에서 지원할 수 있고 학교마다 특성화 분야에 따라 자유로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 특성화고 과거 전문계고 중 특정 분야의 특성화가 목표인 학교를 ‘전문계 특성화고’로 지정했다가 2010년부터 모든 전문계고 명칭을 특성화고로 통일했다.

충북반도체고 1학년 장현봉 군의 하루
“방학 때도 밤 11시까지 기능대회 준비해요”

올해 3월 충북반도체고에 입학한 장현봉 군(17)은 요즘 방학기간이지만 기숙사에 머문다. 기능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교 실습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장 군처럼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실무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기능대회 입상과 자격증 취득에 공을 들인다. 인문계 학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 군이 준비하는 메카트로닉스(기계와 전자를 융합한 분야)는 2인 1조로 구성되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연습하려고 친구와 서로 휴가 일정을 맞춰요. 방학 시작하고 충주 집에 5일 정도 다녀왔는데 이제는 가기 힘들 것 같아요.”

학기 중에도 하루하루 빡빡하기는 마찬가지다. 장 군의 일과는 오전 7시 기상해 8시 20분까지 등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수업은 9시. 장 군은 실습 시간이 가장 재미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CAD(컴퓨터를 응용한 디자인)와 반도체 기초기술 실습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 1주일에 2번 4시간씩 진행되는데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져요.”

정규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4시 30분이지만 이 시간에 귀가한 적은 거의 없다. 곧바로 기능대회 준비가 이어진다.

“기능대회 입상은 대기업 취업의 등용문으로 인식돼요. 마이스터고 학생의 실력을 검증받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죠.”

기능대회 준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신관리와 토익, 자격증 취득까지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토익 졸업인증점수 500점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한다. 현재 장 군은 워드프로세서·ITQ(정보기술자격)·컴퓨터활용능력 시험도 준비 중이다.

특이한 점은 사교육이 거의 없다는 것. 국어·영어·수학 과목 보충을 위해 EBS 인터넷강의를 이용하는 학생이 가끔 있을 뿐 과외나 학원을 이용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분야만 다를 뿐 교육열은 어느 고등학교에 뒤지지 않는다. 기능대회 준비처럼 공교육으로 전문성을 충당하기 힘든 분야는 메달수상자나 외부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명순영·임혜린 기자]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19호(11.08.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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